"인디적 장르를 '가요'에 관한 강한 자의식이 묻어나는 레코딩 사운드로 어떻게 탈바꿈 시킬것인가?" 이 물음은 인디시장의 아티스트가 주류시장으로 포지션을 이동할때면 꼭 한번 직면하게 어려운 문제이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선구자라 할수있는 버벌진트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꽤나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의 답변은 바로 "대중성같은걸 끼얹어"라는 보도자료만으로도 음악적 방향성이 충분히 설명되는 Go Easy 0.5 였다.
그는 단순, 간소한 스타일(simplicity and austerity)과 덜 다듬어진 듯한 인디펜던트의 음악적 특징을 세련된 건반류의 컨트롤러를 비롯 간단한 이펙터를 운용해 인디적인 포지션안에서 자연스럽게 대중성을 확보하고 메이져 시장으로 안착하는 영리함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과거 강렬한 사운드와 무의식에 관한 진지한 가사등 다소 폐쇄적일수 있는 음악적 태도로 무장했던 언더뮤지션들의 헤게모니가 비교적 축소되는 대신 편안한 사운드와 유머러스하면서도 일상의 소박한 소재를 중심으로 시각성 강한 가사를 풀어내는 인디뮤지션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수용자들의 대중성에 대한 인식이 관대해졌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국내 인디씬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검정치마와 뎁(deb)같은 뮤지션과의 협연을 이끌어낸것 역시 이러한 효과를 내기 위한 버벌진트의 전략이라고 볼수있다. 인디라는 컨텐츠가 당대의 트랜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 흐름에 편승해 언더그라운드라는 자신의 아티스트적인 포지션은 유지하되 상업적으로는 언제든 메이저의 경계를 오갈수 있는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말이다. 요즘 예능으로 떠오른 10cm부터 장기하등 화려한 기교의 연주보다는 몇개의 단순한 코드 진행을 위주로 기타를 중심으로 한 편안한 사운드가 메이저차트에서도 먹히는 이유도 사실 수용자들의 음악소비 행태가 변화했기 때문으로 볼수있다. 철저하게 자신의 욕구를 위해 소비되던 음악이 컬러링, 배경음악등이 부각되면서 음악을 일종의 패션아이템처럼 남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소비형태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마치 자신의 지적이미지를 가꾸고 포장하듯이 남들과는 다른 취향, 앞서가는 취향을 음악을 통해 드러내고 싶어하는 심리같이 말이다. 또한 공중파 방송보다 온라인에서 자신의 취향을 쫒아 문화를 향유하는 세대들에겐 상위문화와 하위문화의 구분이 희미해질수 밖에 없었던것도 좋은 영향을 줬다. 남과는 다르지만 수준있어 보이고 싶은 대중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한 버벌진트에게 굳이 포지션 이동은 부담일 뿐 이였으니 버벌진트의 메이저 입성은 이러한 대중음악 흐름에 자연스럽게 편승한 모습이라 할수있었다. 버벌진트는 그만큼 영리한 뮤지션이라는 거다. 결과적으로 버벌진트라는 이름을 메이저차트 상위에 올려놓고도 언더그라운드라는 음악적 프라이드는 그대로 지켜냈으니 말이다.
▒아마추어리즘으로 점철되는 인디적 감성▒
음악적으로 버벌진트의 특징 중 하나는 스스로 최신식의 감각을 유지하되 전체적인 표현방법을 구상할때는 여지없이 일종의 아마추어리즘의 미학이 동반되고 그것의 미덕을 항상 역설한다는 것에 있다. 이미 전작에서 영국이라는 캐릭터등을 통해 아마추어리즘을 미학을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 프로페셔널리즘의 맹점을 꼬집으며 권위적인 힙합스피릿을 조롱한바 있으며 또한 비솝, Inc & Von, 웜맨, 노도등 프로페셔널만으로 표현 하지 못하는 어떤 인디만의 음악적 영역을 마이너풍한 음색등 의도적인 퇴행을 통해서 톡특한 음악적 분위기를 만들어 낸 전례가 있었다.
오버클래스의 음악적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정된 음역대와 음색 또는 아마추어적인 발성등이 프로적인 감각이나 실험적인 발상과 조합되었을때 기존의 관행화된 행위와는 상이한 독특한 질감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인데 산울림의 김창완부터 유재하, 박윤기같은 인디뮤지션들의 음반을 대상으로 비평을 할때 가창력이 부족하다라는 식의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이치라 할수 있다. 아마추어의 프로화가 아니라, 프로의 아마추어화를 통해서 일종의 아마추어리즘의 미학을 역설하고 있다는 것. 미적 판단 관점에서 바라본 버벌진트. 더 나아가 오버클래스라는 크루의 음악적 가치는 아마추어리즘의 미학과 프로페셔널리즘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음악세계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음악적 성향은 Go Easy0.5를 넘어 4번째 정규앨범 Go Easy로 까지 이어지고 있다. 화려한 연주 테크닉이나 높은 수준의 사운드를 추구하기보단 몇개의 단순한 코드 진행에 건반을 중심으로 소박한 디테일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 추상적인 표현보다 세세하고 정밀한 이미지를 직설적인 어법과 일상적인 단어선택을 통해 가사를 전혀 어렵지않게 풀어낸다는 점들 말이다. 또한 성격파 아티스트에 가까운 노도부터 Okasian, 레이디제인등 피처링진에 발탁된 게스트들의 호흡이 상대적으로 스트레이트하고 비브라토등 기교의 사용빈도가 거의 없는점. 그리고 소리질감 또한 단단하게 발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등을 보면 버벌진트는 결국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기술적인 완성도 보다 음악적인 오리지널리티 확립을 더욱 중시하는 작가주의적 아티스트에 가깝다는걸 알수 있다.
사실 버벌진트의 보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버벌진트의 창법은 비강을 비롯한 안면부의 울림이 많이 느껴지는 중성구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은데 소리를 누르지 않고 오히려 공명된 울림에 호흡을 섞어 소리를 퍼트리는 발성은 그다지 프로다운 발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버벌진트음악의 오리지널리티가 자신의 보이스톤으로 허용가능한 표현 범위를 정확히 알고 제한된 음역이지만 섬세한 음색 변화를 통해 다양한 표정을 구현하려는 작가적 기질과 떨어지는 사운드를 그만의 고유미학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에서부터 나온다는걸 상기해 본다면 기술적 퇴행이 과연 음악적 완성도와 정확히 비례하는것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디적 감성으로 풀어내는 흑인음악적 어법▒
혹자는 몇 년 전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국내 인디앨범들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정서를 이유로 '이런 정서를 느끼기 위해 굳이 버벌진트의 이 앨범을 들을 필요가 있느냐'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홍대씬 특유의 소박한 디테일안에서 "흑인음악"의 블루지한 감성을 폭넓게 풀어낸 점들이나 좀 더 기술적인 측면에서 랩과 멜로디 사이에 존재하는 그루브감의 간극을 라이밍으로 자연스럽게 연결 시킨점 등을 상기해 본다면 인디음악 안에서도 고이지는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음반이라 할수 있다.
현재 많은 음악리스너들은 과장된 사운드와 스케일 큰 음악스타일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잉감정을 드러내는 발라드에 지쳤으며 성난 스트로크로 거칠게 연주하는 메탈보다 일렉트릭 베이스 상에서 연주되는 깔끔한 플레이. 즉 반복되는 노트들의 여유있고 정확한 플레이나 선율적이고 소박한 음악에 더욱 많은 지지를 던져주는게 현재 대중음악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무한테크닉으로 대변되던 주류 흑인음악과는 다르게 스트레이트한 창법과 아날로그음색의 미니멀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는 버벌진트식 발라드는 그러한 점에서 대중음악계의 흐름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다.
특히 고이지의 전체적인 심상을 관통하고 있는 ≪우아한 년≫ ≪어베일러블≫ ≪깨알같아≫등의 트랙들은 모던, 포크, 펑크등 록에 집중되어 있던 인디적 감성이 그 영역을 넓혀 어떤 방식으로 흑인음악까지 아우를수 있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트랙들이다. 이미 전작에서 간촐하게 표현해왔던 일종의 감성적 보컬스타일을 확장, 그위에 앱스트랙트한 효과를 가미한 이런 음악스타일들은 관능적인 사운드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진한 얼반의 향취만으로도 홍대인디음악과 분명히 차별화되는 지점을 선사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 기교를 자제하고 소소하게 풀어내는 버벌진트식 어법은 분명 홍대인디씬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으나 인디팝적인 감성을 흑인음악적 어법으로 풀어낸 뮤지션은 사실상 버벌진트가 처음이였으며 메이져에 안착하기 위해 뻔한 음악적 공식을 답습하지 않고 대중적인 음악도 충분히 예술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역설하기 위해 많은 음악적 고민을 했다는것. 그리고 그 해답을 홍대인디음악의 흐름에서 찾았다는 것은 오히려 버벌진트의 영민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랩방법론이 투영된 멜로디메이킹 기법▒
보컬의 비중이 확연히 늘어난 이번 앨범에서도 버벌진트는 여지없이 라임방법론의 리듬학적 지론을 역설하고 있다. 분명 같은 리듬의 동기조각(fragment)들을 같은 어미의 라임으로 연결해 선율의 운율감을 부각시키고 단락의 반복을 통해 프레이즈상의 안정감을 주는 멜로디메이킹 방식은 박진영의 "허니" 세븐의 "라라라"등 기존 댄스가요에서도 심심치 않게 사용해 왔던 작법이였다. 하지만 버벌진트의 곡만큼 시그니파잉. 랩방법론의 본질 그 자체를 관통하고 있던 경우는 기존 가요사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선율의 화성학적 이음을 통한 클라이막스구조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가요 작곡 기법을 탈피해 간결하고 명확한 리듬을 중심으로 짧은 선율과 특정음계를 반복해서 명확한 윤곽을 갖추는 형식의 멜로디가 대중화된 가요문법으로서도 가능성이 있다는건 이미 증명이 된 사실이지만 전문랩퍼인 버벌진트의 라이밍 감각은 기존 가요작곡가의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정규이전의 EP앨범이나 다양한 보컬피쳐링등에서 보여줬던 버벌진트의 멜로디는 극적 기승전결로 하이라이트점을 찍기 위한 도구로서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추상성을 가지면서도 감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으며 극적인 기승전결보다는 전체적인 그루브감의 표현을 중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분명 회화적이며 섬세한 멜로디 진행이 버벌진트 특유의 성격을 만족시키고 있지만 때론 멜로디 도식이 자유롭게 펼쳐나가지 못하고 있어 스케일상의 답답한 느낌을 주는 것 또한 부정할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이 설득력을 가질수 있는건 최소한 보편성에 대한 강박으로 인해 멜로디 진행상의 과장이나 진부한 서정성을 억지로 삽입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폭넓은 형식을 창조해내고 인성과 악기의 협력속에 풍부한 울림을 만들어 내는 스타일은 아니였지만 섬세한 시적 이해력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소박한 감성의 자아를 충실히 표현해 냈다는 것에 충분히 큰 점수를 줄수있다는 것이다.
보컬로서 폭넓은 음역대를 가지지 않았음에도 짧은 시간에 심리적 내용의 느낌을 풍부하게 표현할수 있는건 그가 보컬리스트가 아닌 아티스트적인 차원에서 보컬의 역량을 풀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랩의 특색인 라이밍과 플로우를 멜로디에 그대로 투영시켜 랩과 멜로디 사이에 존재하는 그루브감의 간극을 자연스럽게 연결 시키고 언어유희를 통해 음악적으로 조금 유머스러운 기질을 포함시킨점. 국내 인디 특유의 소박한 디테일안에서 흑인음악의 블루지한 멜로디를 폭넓게 풀어낸 점등은 결국 범람하는 인디의 홍수 속에서도 그만의 독자적인 음악스타일을 어필하기 위한 깊은 고민의 결과가 아니였을까 한다.
▒리얼리티로 무장한 현실 모사적인 스토리텔링▒
버벌진트의 가사는 추상적이지 않다. 그의 가사는 영화의 한 장면을 포착한듯 인물의 심리변화를 치밀하게 따라가는 시각적 동선과 다양한 소재와 여러컷의 이미지 분할을 통해 디테일하게 담아내는 심리적 묘사가 특징이다. 그의 가사속에는 일단 "컨셉트"가 있으며 그 공통적인 특성의 근간에는 서사가 있다. 이때 서사는 단순한 이야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사건의 진행을 대상으로 "공간"을 강조해 실감나는 현실묘사를 유도하는 방식이 되기도 "시간"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서사적인 측면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생각하는 전작의 타이틀곡 "Quiz Show" 를 비롯해 본작의 타이틀곡 ≪좋아보여≫로 이어지는 이별에 대한 가사는 이러한 성향의 작사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무대적 형상화 기법을 통해 영화나 연극의 한장면을 보듯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주는데 추상적인 가사처럼 넓은 범위의 공감을 아우르지는 못하지만 인물, 배경, 사건등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고있는 스토리텔링 작품으로서 이야기자체에 대한 흡입력이 뛰어나 그 자체로 읽는 재미를 주게 된다.
추상성을 최대한 배제한 그의 가사스타일은 그의 문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무겁고 어려운 음악을 주로 해왔던 것에 비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의 문체는 전혀 추상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실적이고 디테일했으며 딱딱한 문어체보다 옆에 친구가 어제 실제 겪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듯 일상언어에 가까운 문체를 사용해 스토리를 어렵지 않게 풀어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가사의 특징은 결국 버벌진트가 근본적으로 어려운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은 아니란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버벌진트는 음악적으로 좋은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일뿐 근본적으로 어려운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이 아니란 것이다.
이런 성향은 고이지의 제목들에서도 찾아 볼수 있다. ≪기름 같은걸 끼얹나≫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깨알같아≫등 시대 유행어나 통신 유행어를 패러디한 제목들을 통해 그는 자신의 유머러스한 기질을 음악에 자연스럽게 포함시키고 있는데 문체라는 것이 언어 사용자 성격의 발로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를 싫어하고, 가벼운 위트와 유머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쉽게 짐작해 볼수있다. 버벌진트의 가사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문체에 꾸밈이 없이 그의 인성을 솔직하게 투영시킨다는 점 말이다.
▷대중친화적일 뿐 결코 쉽게 가진 않았다
"대중적"이라는 단어안에 내포 되어 있는 일부 자조적 의미를 "상업적"이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해 버린다면 거기서 파생되는 산물들은 필연적으로 미적지근하고 상투적인 특성을 가질수 밖에 없게 된다. 산업에 의한 정형화와 기계적인 표준화는 아티스트의 독창적인 표현을 저해할수 밖에 없으니 미적지근하고 상투적인 방법론만 남게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버벌진트의 고이지의 제작은 이러한 세태를 비판하는것에서 부터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상업성과 대중성을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상업성과 대중성이 음악성을 저해할 것이란 무지한 편견을 바꾸기 위한 의도말이다.
사실 Go Easy0.5 접한 후 대중성이라는 키워드안에서 또 하나의 작품이 나오겠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8비트의 스마트한 건반사운드가 돋보이는 버벌진트식 타이틀곡은 여전히 건재했으며 인디적 감성과 버벌진트식 화법이 접목된 수록곡들은 신선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똑같은 패턴의 수많은 힙합러브송들과 일렉댄스음악들의 범람속에 버벌진트라면 대중성이라는 의미안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꺼만 같았다.
인디펜던트,대중성,힙합 3가지 키워드로 대변되는 고이지는 그러한 면에서 어느정도 성공적인 작품이라 할수있다. 하지만 음악의 완성도적인 측면에선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기도 하다. 앞선 단락에서 말했듯 분명 고이지의 예술성은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이 가능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음악적 성과가 앨범 전체적인 완성도안에서 정돈된 느낌을 주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발상이라도 설득력이 떨어질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적인 주제가 정립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는건 앨범 평가를 함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일수 밖에 없었다. 만약 Go Easy에서 추출해낸 음악적 의의가 앨범 전체에 걸쳐 단단히 응축되어 있었다면 이 앨범은 무명, 누명과는 또 다른 음악적 영역에서 독자적인 상징성을 획득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개별 곡들에서 발현되는 강렬한 음악적 색채들이 정작 앨범단위로 확장되었을땐 고이지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심상으로 어필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단 메이져 가요풍의 깨끗한 클린톤으로 모던한 사운드를 보여주는 초반부 트랙과 아날로그적인 질감을 내는 중반부 트랙의 이질감부터가 상당하다. 특히 퍼포먼스(밴드스코어)적인 사운드와 전형적인 샘플링 사운드 간에 존재하는 사운드의 문법차이 혹은 연출력의 간극은 도저히 한앨범에서 좁혀지지 않았다. 샘플링사운드가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Want You Back"라는 곡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니 말이다. 단지 문법적인 부분에서 나오는 공간감의 차이가 너무 두드러져 앨범흐름에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원숭이띠 미혼남≫부터 ≪좋아보여≫까지 앨범 초반부에서 보여준 얼터너티브와 힙합을 팝적인 감성에 입각한 사운드로 변모시킨 감각은 분명 발군이였으나 이후 앱스트랙트한 사운드와 내추럴한 사운드 사이의 간극이 전혀 정돈되지 않은 느낌을 주고 있다. 뜬금없이 나오는 언플러그드 형식의 어쿠스틱사운드는 말할것도 없으며 팝적인 감성에 입각해 있던 랩도 ≪My Audi≫의 강하게 떨어지는 힙합그루브와 뒤섞이는 순간 "버벌진트가 과연 이 앨범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인가?" 라는 앨범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어이없게도 해답을 찾아야 하는 앨범 말미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수밖에 없었다. 김봉현씨의 리뷰처럼 마이아우디가 자가용이란 소재를 통해 자신의 정당한 부를 과시하는 의미있는 스웨거 트랙이란건 분명히 인정한다. 갱스터리즘에 입각해 총을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로 묘사한 지유닛의 트랙 'My Buddy'의 한국판 순화 버전쯤으로 들린다는 점과 'Pimpin The 보험 System'이라는 핫 라인을 남겼다는 점까지도 인정할수 있다. 다 좋다. 다 좋은데 "왜 하필 이 앨범에서냐" 는 말이다. 리릭이든 사운드든 버벌진트가 벌려놓은 감정이 앨범내에서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점은 너무나도 뼈 아프다.
고이지에서 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던 태완의 유려(?)한 보컬과 패턴의 식상함. 초반 16마디 랩벌스로 인해 A파트의 위치가 애매해지면서 전체적인 곡구성의 안정감 떨어져버린 ≪우아한년 2012≫. 베스트라 생각하는 ≪어베일러블≫이 앨범 구성상 크게 부각되지 못한 점. 반대로 Go Easy0.5까지 통털어 가장 버벌진트의 색깔이 잘 묻어난 ≪크리스마스를 부탁해≫와 간결한 형식의 악곡을 끊임없이 변주하는 미니멀리즘식 접근이 돋보인 모던록 ≪기름 같은걸 끼얹나≫가 정규앨범에 포함되지 못한점. 아니 더 크게 Go Easy0.5 라는 앨범이 정규앨범 이전에 선발매된 점. 상업적 프로모션을 위해 주요곡들이 의미없이 희생되어 버린 점은 아직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각설하고 앨범의 타이틀은 Go Easy지만 결과적으로 음악이 쉬워지지는 않았다. 나른하고 몽환적인 사운드, 맥아리 없이 흐트러지는 보컬톤, 모던록과 얼반의 경계를 아슬하게 타고 흘러가는 음악 스타일은 오히려 전작보다 어려워진 느낌이다. ≪우아한 년≫ ≪어베일러블≫ ≪깨알같아≫같은 곡들에서 나타나는 멜로디상의 감성적 표현이 슬픔, 기쁨, 분노등 하나의 뚜렷한 감정을 지향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감정선을 무미건조하게 처리해 음악이 조금 어렵게 느껴질수도 있다는 것이다. 몽환적이면서 건조한 내음이 짙게 묻어나는 작곡스타일에서 2~30대 성인취향을 염두해 둔 버벌진트의 의도를 엿볼수 있는데 전작에 비해 대중친화적인 노력이 보이나 결코 유치하거나 쉬워지진 않았다는 점. 그럼에도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는점. 이 부분만큼은 10대 청취층에 편중되있던 힙합씬에 있어서 또 하나의 성과로 볼수 있을것이다.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는 나뉠지 모르나 상업적으로든 음악적으로든 그의 변화된 음악적 행보는 일단 성공적이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비록 전작과 비교해 앨범 그 자체에서 풍겨지는 클래식함은 떨어질지 모르나 포지션 이동 후 브랜뉴뮤직에서 발매된 자신의 첫 정규앨범으로는 의미있는 음악적 실험이였고 상업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는 것이다. 버벌진트의 성공은 마케팅의 승리라고도 할수 있다. 방송매체의 직접적인 노출로 아티스트라는 신비감을 떨어뜨리는 치명적 오류를 범하지 않고 자신이 10년간 언더에서 얻었던 유일한 자산인 아티스트의 품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엄친아등의 스마트한 이미지를 중심으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어필한 마케팅전략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마치 자신의 지적이미지를 가꾸고 포장하듯 남들과는 다른 취향, 앞서가는 취향을 음악을 통해 드러내고 싶어하는 대중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은 마케팅의 승리가 아닐까 한다.
오는 21일 버벌진트는 새정규앨범 <십년동안의오독I>이 발매된다. 고이지보다 한층 대중친화적인 앨범일꺼라고 예상이 되는데 진부한 말이지만 음악성과 대중성에서 한층 완성도 있는 작품이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써 대중가요 진입에 의미있는 궤적을 남기길 기대해 본다. 버벌진트는 충분히 성공할수 있을꺼라 생각한다. 이미 Go Easy로 그 가능성을 보여줬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