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벌 진트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렇다면 시기상으로 이번에 갓 나온 [go easy] 리뷰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조금 생뚱맞게 이번 리뷰는 그의 3집 앨범 [The Good Die Young]에 대한 끄적임이다.
2009년에 발매된 [The Good Die Young]은 앨범 제목 그대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무릎을 쳤다. 아, 이제껏 한국 힙합씬에서 ‘죽음’에 관련해 앨범을 만든 이가 있었던가? 굳이 예를 들자면 대중성으로도 성공을 거둔 에픽하이의 4집 [Remapping the Human Soul] 정도가 있겠다. 하지만 후자가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 반면에, 전자는 첫 트랙서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그 일관성을 놓지 않는다.
[The Good Die Young]의 청사진은 그의 [누명]에 수록된 ‘사자에서 어린아이로’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버벌 진트는 스스로 이 앨범을 ‘진화하는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가’라고 평했다. ‘진화 중’이다. [무명], [누명]을 통해 이미 그의 랩 스킬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었겠지만, 계속해서 진화하는 자신을 위해 ‘더 이상의 정규 앨범은 없다’라는 말까지 뒤엎었다.
그렇다면 ‘사자에서 어린아이로’와 ‘죽음’의 연관성은 무엇인가? 우선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트랙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겠다. 많이 알려진 듯 T. I.의 동명의 곡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이 곡에서 버벌 진트는 자신은 더 이상 King이 되기를 포기했다. 그 다음 ‘무간도’에서는 치열하게 달려온 그의 과거, 그리고 그의 현재를 이야기 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버벌 진트가 이 앨범에서 [누명]때 보여주지 못했던 무기들을 한풀이 하듯(?) 마음껏 보여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곡이 끝날 때쯤 많은 누명과 nonsense들을 무시하고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떳떳하게 말하고 있다.
‘Inspiration’, ‘Searchin’’ 부터 ‘Check the Rhime’까지의 진행 방식은 지금껏 그의 앨범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그것과 유사하다. 각각의 곡들은 다른 듯 하면서도 서로의 개연성을 놓지 않는다. 이 곡들에서 그는 특유의 스토리-텔링과 들으면서도 신기한 라임 배치들로 리스너들의 청각적 즐거움에 집중했다. 특히 ‘을지로5가’는 가히 놀랄 만 하다. 가사들을 보면 우리가 평소에 구술하는 대화체이지만 각각 음율을 살려냈다. 랩 주제 또한 상당히 신선했다. 하지만 가사집 없이는 가사를 한번에 캐치해내기 힘들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삼박자 2010’ 이후로 그는 변해간다. 앞에서 언급이 된 ‘어린아이’로의 진화이다. 요즘 관심사는 ‘족저근막염’과 ‘People That Die Young’이라고 말하고, 강을 건너면 유재하, Jeff Buckley 등의 작품을 들을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던진다. 곧이어 이어지는 ‘Quiz Show’는 [go easy 0.25] 쯤을 듣는 것 같아 실로 반가웠다.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트랙인 만큼 그의 노력이 흠뻑 묻어난다.
비장한 두 트랙 ‘Dramas of Life’와 ‘나쁜 교육’은 말하자면 그의 마지막 유언이다. 각각 Beenzino와 Tiger JK가 랩을 주고받고 버벌 진트가 랩과 훅을 맡는 식으로 이루어진 두 곡에서 그는 ‘R.E.S.P.E.C.T’ 이후의 마지막 말을 전한다. ‘Dramas of Life’에서는 무기력한 한 사람의 상황 묘사가 두드러졌고, ‘나쁜 교육’에서는 똑똑한 자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경고한다. 특히 ‘나쁜 교육’은 ‘을지로5가’와 함께 이 앨범의 베스트 트랙으로 뽑힐수 있을 만큼 작품성의 밀도가 높다. 그 뒤를 잇는 트랙인 ‘La Strada’에서 그는 말 그대로 ‘소멸’한다. 곡을 들으면서 무대 위에서 힘을 잃어가는 MC의 이미지를 쉽게 구현해 낼 수 있었다.
결론이다. 자신이 ‘사자’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버벌 진트는 ‘소멸’ 역시 진화의 일부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소멸’이 ‘죽음’을 뜻하는 데에는 반론이 없다. 그는 확실히 [누명]에서 진화했고, 또 그의 그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보게 만들었다. 4집 앨범인 [go easy]가 차트 순위로 대중들에게도 인기를 받았다는 것이 이것을 방증한다. 만약에 앞으로의 한국 힙합 수작의 척도가 있다면 이 앨범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