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힙합이란 단어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 한국 힙합의 성지 마스터 플랜을 중심으로 언더힙합은 서울특별시의 가장 뜨거운 문화로 자리 잡으며 하나의 트랜드를 만들어냈다. 그러던 중 음원의 불법다운로드 고착화로 인한 음반시장의 붕괴가 확산되어가며 마스터 플랜도 결국 다른 차로 갈아타게 되고 힙합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일부는 기존의 힙합 자신의 모습을 지키며 와신상담하거나 일부는 기존의 모습을 버리고 힙합이 아닌 랩 음악으로써 대중가요 시장에 좋은 감초 역할을 획득해 나갔다.
2004년까지 이어진 공연이 중심이 된 클럽의 힙합 문화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했다. 전국적으로 클럽붐이 일며 팔도강산에 클럽이 우후죽순 생겨나게 됐고 그렇게 래퍼들은 전국을 돌며 밤거리를 지배했다. 그러다 NB등의 부비부비 중심의 남녀의 성적욕구를 자극하는 새로운 형식의 클럽 문화가 성행하기 시작하고 그즈음 담배회사 British American Tobacco 의 스폰도 끊겨져 나가 클럽에선 더 이상 래퍼들을 필요치 않게 됐다. 오히려 은밀한 간격의 템포에 맥을 끊는 방해꾼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문화의 트랜드 또한 빠르게 바뀌어 가며 더 이상 가장 핫하지 않은 문화가 되어버린 힙합은 점점 자리를 잃어갔다. 그렇게 힙합은 기존 수요층인 성인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고 점차 시장성을 잃어갔다. 그때 등장한 소울컴퍼니는 기존 클럽에서 성행했던 본토 지향적인 힙합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을 지녔었다. 남성과 마초 대신 감성과 섬세함이 있었고 젊은 신진의 무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젊음과 감성은 대안이 되어 새로운 수요층인 청소년들을 씬으로 이끌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힙합은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2006년부터 가속화된 소울컴퍼니의 신화와 힙합플레이야의 성장은 점점 어려워져가는 인디씬의 다른 장르와는 달리 힙합씬의 풍년을 만들어냈다.
2000년 경 하자센터에서 열린 MC 메타의 힙합 강좌를 뿌리로 시작된 소울 컴퍼니(Soul Company)는 2004년 6월 10일 The Bangerz (더 뱅어즈) 앨범으로 공식적으로 설립한다. 해성처럼 등장한 소울컴퍼니의 힙합은 감성적으로 섬세했으며 낭만적인 매력을 지녔었다. 그런 소울컴퍼니의 음악은 한국사회 교육제도의 억압에 지친 대다수 10대 층의 팬들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10대 팬들이 필두가 되어 힘들었던 시장에 활기를 되찾게 되었고 차근차근 자신들의 색깔을 더욱 확고히 더욱 다양하게 다지며 소울컴퍼니는 한국 힙합 언더그라운드의 중심으로 서게 되었다. 왕이 된 후 한편에선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한편에선 본토힙합과의 거리를 두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소울컴퍼니는 한국 힙합의 중심이었고 거대한 야자수였으며 새로운 활력을 부여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성을 구축해나갔다. 커다란 시장에서도 그들을 주목했으며 기존의 언더그라운드씬이 가진 기록들을 모조리 갈아치웠다. 모두가 소울컴퍼니의 명성을 원했고 소울컴퍼니를 따라하는 아류들도 생겨났다.
2010년 12월, 솔컴의 심장이었던 더 콰이엇이 탈퇴의사를 밝혔다. 다음해 랍티미스트, 화나, 디제이 웨건이 차례로 빠지며 심상찮은 기운을 풍겼다.
그리고 2011년 11월 27일, 8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한국 힙합을 지탱해온 대한민국 2차 힙합 부흥의 주역 ‘소울컴퍼니’가 자신의 마지막 콘서트를 가졌다.
#한국 힙합의 위기! 혹은 새로운 시작?
2009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던 한국의 힙합씬은 조금씩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강곡선을 그리던 CD 구매자 수가 점진적으로 줄어들어가는 시대적 변화가 원인이라고 하기엔 조금 더 심각해 보였다.
2000년 초반 서울을 시끄럽게 하고 가장 멋지고 잘나가던 힙합은 이젠 애들만 듣는 것이라 치부된다. 애초에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뜨거움을 지녔었다. 대중가요 씬의 힙합을 사칭하는 것들과 대놓고 맞짱을 뜨기도 하며 팬들은 언더힙합을 가장 높게 추앙했고 믿고 따랐다. 그들은 가벼운 가요힙합을 듣는 빠돌이들을 무시하며 언더힙합이란 묵직한 메이져리그의 팬이 되었다. 뮤지션들은 점점 욕심이 났고 삶은 여전히 힘들었다. 성공과 부를 얻고 싶었고 배고픔이 싫었다. 세상을 움직이고 싶었다. 좀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렇게 조금씩 과거 자신들이 거부했던 그 화려한 조명이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 매니아들은 비로소 이곳이 아래란 것을 이곳이 사실 마이너리그였었다는 사실을 깨닿게 되었고 조금씩 자취를 감추게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유행이 된 무수한 디스전은 반짝스타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결국은 서로에게 독이 되었다. 작은 마을에서 서로를 헐뜯는 행위는 이 작은 마을의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패배한 뮤지션 혹은 크루의 팬들은 씬에서 공중으로 흩뿌려졌다. 급감하는 커뮤니티의 유동인구와 파급력, 그나마 유지되었던 CD시장의 붕괴로 힙합은 다시금 빙하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것은 현실이다. 소울컴퍼니의 해체는 힙합씬의 해체로 이어지지 않는다. 힙합씬의 위기가 소울컴퍼니의 해체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한국 힙합씬은 지금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소울컴퍼니는 한국 힙합씬에 한국인으로써 가질 수 있는 우리만의 정서를 담아내려 노력했다. 그들의 음악이 가진 낭만적이며 시적인 운치는 한국 힙합의 다양성을 만들어냈으며 건전한 힙합 문화를 정착하는데 커다란 몫을 해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음악으로 위로받았으며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소울컴퍼니는 2004년부터 8년의 시간동안 총 24명의 아티스트를 배출하고 80개의 타이틀을 발매했다.
급감하는 커뮤니티의 유동인구와 파급력, 그나마 유지되었던 CD시장의 붕괴로 힙합은 다시금 빙하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것은 현실이다. 소울컴퍼니의 해체는 힙합씬의 해체로 이어지지 않는다. 힙합씬의 위기가 소울컴퍼니의 해체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한국 힙합씬은 지금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2000년 초반 서울을 시끄럽게 하고 가장 멋지고 잘나가던 힙합은 이젠 애들만 듣는 것이라 치부된다. 애초에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뜨거움을 지녔었다. 대중가요 씬의 힙합을 사칭하는 것들과 대놓고 맞짱을 뜨기도 하며 팬들은 언더힙합을 가장 높게 추앙했고 믿고 따랐다. 그들은 가벼운 가요힙합을 듣는 빠돌이들을 무시하며 언더힙합이란 묵직한 메이져리그의 팬이 되었다.
초등학생때 아에이오우어를 듣고 정말 소름돋았던 기억이나네요
한 때 소울컴퍼니에 정말 빠진 적도 있고 솔컴쇼도 가보고 정말 좋아하는 레이블인데 해체되서 너무 아쉽습니다
기사에 공감이가네요 한국힙합이 빙하기에있다고
작년 제작년에 제가 힙플자게활동을 할때부터 시작되었던
병림픽과 디스전, 펀치라인 뽐내기, 이슈만들기나 국게에서 까댓던 뮤지션들 점점 수준이 낮아지는 녹음물과 수준떨어지는 가사들.. 그리고 일명 '개나소나' 뮤지션들
이런 것들이 전부 나비효과처럼 불어나 힙합리스너의 멘탈에도 붕괴의 조짐이보였습니다
정말 아쉽군요
아무튼 더 좋은 모습기대합니다 소울컴퍼니
음... 솔컴 안지 1년 됬나? 2년? 화나 좋아한지 1년도 안 됬는데... 이번에 해체 한다고 했을때 그렇게 엄청 팬? 은 아니지만 아쉽고.. 그래서 베스트 앨범도 사고. 비록 콘서트는 못 갔지만 그 후기나 찍은 영상들 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말이죠. 또 이렇게 글로 솔컴 이야기가 나오니까... 더 아쉽기도 하네요.
아, 그리고... 윗분들 말처럼, DVD 안나오나요..?! ㅠㅠ